국내 창작 뮤지컬 중 과학적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은 많지 않다. 하지만 **뮤지컬 <마리 퀴리>**는 이례적으로 실존 과학자인 마리 퀴리의 삶을 중심에 놓으며, 과학과 예술이 만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2020년 초연 이후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사랑받아온 이 작품은 국내를 넘어 일본과 폴란드 등 해외 무대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과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마리 퀴리>는 단순히 위인의 삶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작품은 과학의 본질, 윤리적 책임, 그리고 여성 과학자들의 길이라는 세 가지 핵심 주제를 무대 위에서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 글에서는 뮤지컬 <마리 퀴리>를 과학자의 관점에서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그녀가 발견한 라듐과 방사능이 상징하는 과학적 혁신, 과학기술이 불러온 사회적·윤리적 문제, 그리고 여성으로서 과학계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현실 등을 중심으로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이 작품의 깊이를 탐색해보고자 한다. 예술의 언어로 풀어낸 과학은 관객에게 어떤 울림을 주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이야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1. 발견과 그 이면
뮤지컬 <마리 퀴리>의 중심에는 그녀의 위대한 발견, **라듐(Radium)**이 있다. 이 물질은 20세기 초 인류에게 놀라운 가능성을 안겨주었다. 방사선 치료의 가능성은 의학계에 혁명을 일으켰고, ‘신비로운 빛을 내뿜는 물질’로서 상업적 가치 또한 주목받았다. 작품은 마리 퀴리가 실험실에서 방사능의 존재를 발견하는 순간을 드라마틱하게 재현하며 과학 탐구의 열정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과학자의 관점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라듐의 발견이 단순한 성공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마리 퀴리는 자신의 연구를 인류의 삶에 기여하고자 했지만, 동시에 그 물질은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노동자들의 건강을 파괴하는 치명적 위험이 되었다. ‘라듐걸스(Radium Girls)’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이 서사는 과학의 이면을 직시하게 만든다. 이처럼 뮤지컬은 라듐을 단순한 발견물이 아니라 빛과 어둠을 동시에 품은 과학의 메타포로 활용함으로써, 관객들에게 과학의 양면성을 숙고하게 만든다. 이 작품은 과학자들에게 “무엇을 발견했는가”보다 “그 발견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가”를 자문하게 한다. 과학이 진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와 인간의 삶에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를 반추하게 만드는 이 지점에서, <마리 퀴리>는 단순한 과학자의 전기를 넘어선다.
2. 윤리와 책임
뮤지컬 <마리 퀴리>에서 가장 갈등이 고조되는 순간은 바로 ‘라듐병’으로 죽어가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마리 퀴리는 처음엔 자신의 연구가 인간을 해치는 결과를 낳으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점점 라듐이 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생명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그녀는 과학자로서의 윤리적 책임에 직면하게 된다. 이 장면은 과학자에게 있어 연구 결과에 대한 도덕적 책임이 무엇인지를 되묻는다. 과학은 중립적인 도구가 아니다. 그것이 어떻게, 누구에 의해,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는지는 과학자가 외면할 수 없는 숙제다. <마리 퀴리>는 이러한 메시지를 인물 간의 갈등과 노래, 서사 구조를 통해 효과적으로 녹여냈다. 특히 마리 퀴리가 진실을 은폐하려는 회사 측과 대립하며 고뇌하는 장면은 “지식은 힘”이면서도 “책임”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이는 오늘날의 과학자들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메시지다. 유전자 조작, 인공지능, 원자력 등 현대 과학이 직면한 수많은 윤리적 딜레마는 과학자들이 기술의 발전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류에 미칠 영향을 깊이 고민해야 함을 보여준다. <마리 퀴리>는 바로 이 책임의식을 예술로 형상화하며, 과학자뿐 아니라 관객 모두가 스스로에게 묻도록 만든다.
3. 정체성
<마리 퀴리>는 단지 과학 이야기만이 아니다. 이 작품은 여성 과학자라는 정체성을 가진 마리 퀴리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어떻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나갔는지를 담고 있다. 20세기 초,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연구실 출입조차 제한되던 시대에 마리 퀴리는 남편 피에르 퀴리와의 공동 연구를 통해 노벨상을 수상하지만, 여전히 ‘조수’나 ‘보조자’로 평가받는 현실에 부딪힌다. 뮤지컬은 마리가 자신의 연구 성과를 인정받기까지 얼마나 많은 편견과 사회적 장벽을 뚫어야 했는지를 감정적으로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이는 현대의 여성 과학자들이 여전히 겪고 있는 문제들과 맞닿아 있다. 과학계의 성불평등, 기회 접근의 불균형, 육아와 연구의 양립 문제 등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숙제다. <마리 퀴리>는 과학자의 길을 걷는 여성들이 가야 할 길이 여전히 험난하다는 현실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가능성과 희망을 제시한다. 그녀의 삶은 단지 과거의 위인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연구실에서 빛을 좇고 있는 수많은 여성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실존적 모델로 작용한다. 뮤지컬 <마리 퀴리>는 단지 한 명의 과학자 전기를 무대에 옮긴 것이 아니다. 이 작품은 과학의 발견이 어떻게 인간 사회와 윤리, 가치관과 맞물리는지를 탁월하게 보여주며, **‘과학의 인간학적 성찰’**이라는 드문 서사를 완성했다. 라듐이라는 발견은 과학적 성과이자 재앙의 씨앗이 되었고, 이를 둘러싼 윤리적 갈등은 과학자의 내면을 끊임없이 흔든다. 또한 여성으로서, 사회적 소수자로서 겪는 현실은 그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의 문제임을 분명히 한다. 과학자의 눈으로 <마리 퀴리>를 본다는 것은, 단지 사실과 원리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너머에 있는 인간, 책임, 존재의 의미를 파고드는 작업이다. 이 뮤지컬은 예술이 단지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매체가 아니라, 깊이 있는 사고를 자극하고, 사회적 질문을 던질 수 있음을 증명한다. 이제 우리는 마리 퀴리의 삶을 무대에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와 과학, 윤리의 장에서 되새겨야 한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