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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킹키부츠 ( 존재의 재정의, 해체와 경계, 윤리 )

by xddxs7377 2025. 7. 31.

뮤지컬 〈킹키부츠〉는 영국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무너져가는 구두 공장을 살리기 위해 성소수자 드랙퀸과 손을 잡고 ‘특수 부츠’를 제작한다는 독특한 설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작품은 단순한 생존기의 틀을 넘어,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수용, 그리고 진정한 자아를 찾는 여정을 경쾌하고 감동적으로 담아낸다.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강렬한 드랙쇼와 눈부신 패션, 그리고 신나는 팝 넘버로 구성된 음악이다. 특히 전설적인 팝 디바 "신디 로퍼(Cyndi Lauper)"가 맡은 음악은 극의 리듬감을 더하고, 다양한 캐릭터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또한 주인공 찰리와 롤라의 관계는 단순한 동업 이상의 깊은 신뢰와 존중을 그려내며 관객에게 따뜻한 울림을 전한다. 〈킹키부츠〉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라(Be who you wanna be)’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한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이해와 포용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며, 연령이나 성별을 불문하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을 자극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화려한 외형 뒤에 진정한 인간애와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깊은 주제의식을 담고 있어, 단순한 볼거리 이상의 가치를 제공한다. 뮤지컬 〈킹키부츠〉는 단순한 유쾌한 드랙쇼가 아니다. 오히려 이 작품은 철학적으로 인간 존재의 본질, 정체성, 사회적 규범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런던과 브로드웨이를 강타한 이 작품은 드랙퀸 롤라와 구두 공장 사장 찰리의 만남을 통해, 사회가 규정한 ‘정상’의 경계를 부수고 진정한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이 글에서는 철학자 — 특히 실존주의와 해체주의, 그리고 윤리학의 관점에서 이 뮤지컬을 조명한다. 니체, 보부아르, 데리다, 푸코 등 철학자들의 사상을 바탕으로 〈킹키부츠〉가 어떻게 인간 존재의 의미를 질문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예술은 종종 철학이 다루지 못한 ‘살아있는 질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킹키부츠〉는 바로 그런 작품이다.

 

1. 존재의 재정의 

찰리는 아버지의 구두 공장을 물려받으며 전통적 남성성과 책임의 굴레에 짓눌린다. 반면, 롤라는 어릴 적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외면받았고, 그 상처는 그녀의 무대 위 페르소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이 대비는 니체가 말한 "되기(becoming)"의 철학을 상기시킨다. 니체는 인간은 정해진 본질이 없으며, 자기 자신을 창조하는 존재라고 했다. 찰리는 사회가 규정한 ‘성공한 남자’라는 관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공장을 재정립하고, 롤라는 자신을 더 이상 숨기지 않고 무대 위에서 주체로 선다. 〈킹키부츠〉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누구인가?"가 아니라, "너는 누구로 되어가고 있는가?"라고. 이는 실존주의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인간은 자유롭고, 그 자유는 곧 선택과 책임을 동반한다. 찰리는 처음엔 도망치고 싶어 했지만, 결국 자신이 내린 결정에 책임지며 진정한 의미에서 '되는 중'인 인간이 된다.

2. 해체와 경계 허물기

드랙퀸이라는 존재는 이분법적 사고 남성과 여성, 정상과 비정상, 공장과 예술, 정장과 킹키부츠 를 완전히 해체시킨다. 데리다가 말했듯, 모든 언어와 의미는 경계 위에서 흔들린다. 롤라는 그 경계 자체를 끊임없이 흔들며,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촉매가 된다. 사회는 롤라를 ‘비정상’이라 낙인찍지만, 사실 그 비정상이라는 라벨조차 권력의 담론일 뿐이다. 푸코의 관점에서 보면, 〈킹키부츠〉는 규범성과 감시의 문제를 건드린다. 공장의 노동자들은 처음엔 롤라를 의심하고 거부하지만, 그 시선은 곧 그들 자신이 가진 두려움의 반영임을 드러낸다. 푸코는 말한다. 감시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 내면화된 규율에서 비롯된다고. 롤라는 이 억압의 구조를 파괴하고, 웃음과 화려함으로 그것을 전복한다. 이러한 해체는 단순한 ‘다름’의 인정이 아닌, ‘다름이 기준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이는 윤리학적 전환점을 마련한다 타자를 사랑할 수 있는가?

3. 윤리와 타자성 

롤라는 찰리와 공장 노동자들에게 있어 ‘타자’다. 전혀 다른 외형과 언어, 감수성을 지닌 존재. 레비나스는 말한다. 타자와의 만남은 항상 윤리적이며,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책임을 느낀다고. 롤라는 그 존재만으로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지만, 그것은 오히려 우리가 익숙한 세계가 얼마나 편협했는지를 드러내는 거울이다. 찰리는 롤라를 처음엔 ‘사업 파트너’로만 받아들이려 하지만, 그녀가 진짜로 상처받고 있을 때에야 진심을 깨닫는다. "넌 있는 그대로 완벽해"라는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닌 윤리적 결단이다. 이는 보부아르가 말한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말처럼, 롤라가 사회가 정한 틀을 벗어나 자기 자신을 선택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결국 이 작품은 타자를 이해하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윤리적 메시지를 준다. 공감이란 비슷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수용할 수 있는 용기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말이다. 〈킹키부츠〉는 눈부시게 화려한 외피 속에 가장 근원적인 철학적 질문을 담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타자는 나에게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기준 삼아 사는가’에 대한 사유. 이 작품은 니체가 말한 자기 창조, 데리다가 논한 경계의 해체, 레비나스가 강조한 윤리적 타자성을 모두 응축한, 철학적 드라마이다. 철학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묻는다. 그리고 뮤지컬 〈킹키부츠〉는 그 질문을 무대 위에서 살아 숨 쉬게 만든다. 찰리와 롤라,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규범의 경계를 넘어 자신만의 ‘부츠’를 신고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철학자의 눈으로 본 킹키부츠의 진짜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