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는 입장에서 뮤지컬 〈서편제〉를 마주한다는 것은 하나의 이야기가 어떻게 다른 형식으로, 더 깊은 감성과 울림을 가질 수 있는지를 체감하는 경험이다. 뮤지컬 〈서편제〉는 이청준 작가의 단편소설 「서편제」를 바탕으로 창작된 작품으로, 1993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로도 제작되며 대중적 인식을 넓혔다. 그러나 이 뮤지컬은 단순한 서사의 재현이 아니다. 원작 소설의 정서와 중심 테마는 그대로 유지하되, 음악과 무대, 배우의 표정과 움직임을 통해 새로운 문학적 차원을 열어 보인다. 한국 창작 뮤지컬의 정체성과 가능성을 증명하는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서편제〉는 동양적인 미학, 한국 고유의 소리 ‘판소리’, 그리고 인간 내면의 고통과 구원을 중심축으로 삼는다. 문학적으로 본다면 이 작품은 ‘예술혼’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다양한 인물 간의 갈등과 화해, 그리고 시간의 흐름 속 상처와 치유로 풀어낸 장대한 서사시라 할 수 있다.
1. 배경
뮤지컬 〈서편제〉의 배경은 해방 직후의 전라남도 남도 지역이다. 격동의 시대를 지나며 사회 구조는 무너지고 예술의 자리는 점차 위축되어 간다. 그 속에서 주인공 유봉은 전통 판소리를 지키기 위해 떠돌이 예인으로 삶을 이어간다. 이는 단지 시대적 배경이 아니라, 예술의 본질과 그 존재 이유를 질문하는 상징적 장치다. 소설적 관점에서 보면, 이 작품의 공간과 시대는 ‘예술적 정체성’이라는 주제를 구체화하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예컨대,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전통을 고수하는 유봉의 삶은 곧 낡은 가치와 새로운 질서 사이의 충돌을 나타낸다. 뮤지컬은 이를 무대 위에 빛과 그림자, 전통 가락과 현대적 연출을 조화시켜 구성함으로써, 단순한 배경을 넘어서 관객의 체험을 확장하는 ‘시간의 은유’로 발전시킨다. 이처럼 〈서편제〉는 단순히 과거의 향수에 기대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라는 시간을 빌려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 "예술은 왜 존재하는가, 예술가는 무엇을 위해 고통을 감내하는가?"를 조용하지만 강하게 제기한다.
2. 줄거리
뮤지컬의 중심 줄거리는 유봉과 그의 딸 송화, 양아들 동호의 이야기다. 유봉은 가혹할 정도로 엄격한 판소리 교육을 통해 송화를 명창으로 키우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딸은 시력을 잃게 되고, 동호는 가출하며 가족은 흩어진다. 그 후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동호는 우연히 송화가 소리를 하는 모습을 듣게 되며 가족의 기억과 상처가 다시 되살아난다. 소설가의 시선에서 보면 이 이야기는 단순한 부녀간의 갈등을 넘는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감내해야 했던 고통, 그리고 사랑과 희생의 아이러니를 조명한다. 특히 송화가 맹인이 된 후에도 소리를 이어가는 모습은 ‘절대 고통 속에서 피어난 예술혼’이라는 주제를 가장 극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문학에서 자주 다뤄지는 ‘고통과 창작’의 관계를 뮤지컬이라는 형식으로 더욱 감각적이고 직관적으로 풀어낸 예라 할 수 있다. 또한 동호는 관객의 입장에서 극을 바라보는 역할을 하며, 유봉의 방식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제공한다. 이는 극의 균형을 잡는 동시에, 관객에게 보다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결국 〈서편제〉는 한 가족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전통예술’이라는 주제를 철학적 깊이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다.
3. 감상 포인트
〈서편제〉의 가장 뚜렷한 감상 포인트는 ‘소리’다. 판소리의 장단, 창법, 그리고 절절한 가사가 극의 전개와 감정을 밀도 있게 이끈다. 단지 배경음악의 역할을 넘어, 음악이 곧 등장인물의 내면이고, 서사 그 자체가 된다. 송화가 눈을 감고 소리를 부를 때, 관객은 단지 그녀의 아픔을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음악으로 자기 정체성을 어떻게 회복하는지를 목격하게 된다.이러한 음악적 서사 구조는 문학적 기법인 ‘내면 독백’과도 유사하다. 단지 텍스트가 아닌 가창으로 표현될 뿐, 그 울림과 여운은 더 강하게 전달된다. 유봉의 고집스러운 훈육 장면, 송화의 맹목적 수련, 동호의 분노와 방황 모두는 가창을 통해 감정의 깊이를 입체화한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세 인물이 서로를 마주 보며 소리를 이어가는 장면은, 한 편의 시 같고, 인간 드라마의 정점을 보여주는 서사의 완성이다. 시각적 요소 또한 이 뮤지컬의 큰 장점이다. 무대 미술은 미니멀하지만 강렬하고, 조명과 음향 효과는 판소리의 리듬과 맞물려 극의 몰입도를 배가시킨다. 이는 마치 잘 쓰인 문장에서 한 단어도 허투루 쓰이지 않듯, 무대의 모든 요소가 유기적으로 서사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소설적 완성도를 지닌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뮤지컬 〈서편제〉는 한국적 서사, 전통 예술, 인간 감정의 복합적인 결을 지닌 창작 뮤지컬의 대표작이다. 소설가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작품은 ‘글로 쓸 수 없는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실현시킨 문학적 결과물이다. 줄거리와 감정, 음악과 배경이 하나로 어우러진 이 뮤지컬은, 관객에게 단순한 감상이 아닌 깊은 사유를 남긴다. 창작자의 입장에서, 이 작품은 질문을 던진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그리고 그 길을 걷는 사람은 얼마나 외롭고, 동시에 위대한가? 이러한 질문은 단지 뮤지컬의 감상에서 끝나지 않고, 문학을 쓰는 이들에게도 큰 영감을 준다. 〈서편제〉는 단순히 한 시대의 전통을 재현한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답기 위해 예술을 필요로 한다’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이며, 한국 창작 뮤지컬이 세계 무대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증명한 문학적 명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