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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가의 눈으로 본 뮤지컬 "캣츠" ( 안무, 캐릭터, 무대 )

by xddxs7377 2025. 8. 8.

 

전설적인 뮤지컬 "캣츠" (Cats)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작품 중 하나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음악, T. S. 엘리엇의 시, 그리고 환상적인 무대 디자인이 어우러져 완성된 이 뮤지컬은 특히 '안무' 측면에서 극찬을 받아왔다. 대사가 거의 없는 이 작품에서 배우들의 움직임은 단순한 춤을 넘어, 각 고양이의 성격과 사연, 그리고 드라마를 전달하는 핵심 도구로 작용한다. 이 글에서는 안무가의 시선으로  "캣츠"를 바라보고, 이 작품이 춤이라는 언어를 통해 어떻게 관객의 감정에 호소하고 이야기를 풀어가는지, 세 가지 측면에서 깊이 있게 분석해보려 한다 

 

뮤지컬 "캣츠"

 

1. 안무

〈캣츠〉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단순한 무용을 넘은 동물의 재현이다. 배우들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무대 위에서 실제 고양이처럼 행동하고 움직인다. 이는 단순히 손을 고양이처럼 움직이거나 등을 구부리는 수준이 아니다. 안무가 길리언 린(Gillian Lynne)은 철저한 리서치와 훈련을 통해 고양이의 유연함, 긴장감, 호기심, 민첩함을 인간의 움직임으로 해석하고 구조화했다. 배우들은 발끝부터 손끝까지 의식적인 근육 사용을 통해, 고양이 특유의 관능적인 흐름과 날렵한 리듬을 구현한다. 동작의 경계가 흐릿하고 유려하지만, 그 안엔 고도의 근육 제어가 요구된다. 안무는 정확한 형태를 요구하기보다 동물적인 에너지와 본능적인 흐름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뮤지컬 안무 역사에서 유례없는 시도였다. 안무가의 입장에서 이 작품은 인간의 몸이 얼마나 다양한 감각을 담아낼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이자 도전이다. 단순한 무용의 기교를 넘어, 생명체의 본능과 정서를 전달하는 도구로서의 몸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결과물이 바로 〈캣츠〉의 안무다.

2. 캐릭터

〈캣츠〉의 가장 놀라운 점은 등장 고양이 각각이 고유의 움직임과 리듬을 지닌 캐릭터 안무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같은 무대 위에서 수십 명의 배우가 동시에 춤을 추지만, 단 하나의 춤도 똑같지 않다. 각 고양이는 성격, 나이, 지위, 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신체 표현을 사용하며, 이는 안무의 깊이를 배가시킨다. 예를 들어, 극 중 젤리클 고양이들 중 '럼 텀 터거' (Rum Tum Tugger)는 자유분방하고 반항적인 성격을 지녔다. 그의 안무는 전형적인 록스타처럼 몸을 던지는 과장된 동작, 골반을 이용한 강한 리듬감, 그리고 관객과의 끊임없는 아이 콘택트로 구성된다. 반면, 미스터 미스토펠리스(Mr. Mistoffelees)는 마법과 신비의 고양이다. 그의 안무는 발레의 테크닉과 탭댄스를 결합한 환상적인 움직임으로, 기민하고 섬세한 몸짓을 통해 그 정체성을 보여준다. 이처럼 안무는 단순한 군무 이상의 역할을 한다. 안무는 곧 캐릭터의 언어이며, 관객에게 그들의 개성을 전달하는 핵심 수단이다. 이는 안무가에게 있어 단순한 안무 구성을 넘어, 인물 분석과 심리 묘사에 가까운 창작 과정을 요구한다. 춤으로 스토리텔링을 해내는 뮤지컬로서, 〈캣츠〉는 그야말로 교과서적인 작품이다.

3. 무대 

〈캣츠〉의 또 다른 안무적 특징은 무대와 배우, 조명이 완벽하게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뮤지컬이 정형화된 공간에서 군무를 진행하는 데 비해, 〈캣츠〉는 무대 전체를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활용한다. 고양이들은 무대 중앙뿐 아니라 객석 사이, 계단, 무대 구석구석을 누비며 관객과의 경계를 허문다. 이러한 공간 활용은 단순한 동선의 문제가 아니다. 군무 안에서 각 배우는 개별 동선을 갖고 있고, 전체는 유기적으로 짜인 안무 안에서 서로 교차하고 흐른다. 안무가는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무대 전체를 악보 삼아 움직임의 리듬과 균형을 조율한다. 이로 인해 관객은 시종일관 동적인 에너지와 공간감을 체험하게 된다. 특히 '젤리클 볼(Jellicle Ball)' 장면은 20분 이상 이어지는 긴 군무 시퀀스다. 이 장면은 배우의 체력과 집중력을 극한까지 시험하는 동시에, 무대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수많은 배우들이 동시에 각기 다른 동작을 수행하면서도 하나의 큰 흐름으로 연결되는 그 광경은, 안무가 입장에서 절대적인 통찰력과 구조화 능력이 요구되는 마스터피스라 할 수 있다.〈캣츠〉는 단순한 뮤지컬이 아니다. 움직임으로 시를 쓰고, 춤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전인적 예술 작품이다. 안무가에게 이 작품은 도전이자 영감이다. 고양이라는 생명체의 움직임을 인간의 몸으로 재현하고, 각기 다른 캐릭터의 성격을 안무로 구성하며, 무대와 일체화된 공간 흐름을 설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캣츠〉는 전 세계 안무가들에게 “춤이란 무엇인가”, “움직임으로 어떻게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뮤지컬계에서 가장 실험적이면서도 예술적인 안무가 집약된 이 작품은, 움직임 하나로 관객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믿음의 결정체다. "캣츠"는 안무가에게 단순한 직업적 과제가 아닌, 예술적 철학을 구현할 수 있는 무대다. 그리고 이 철학은 오늘도 무대 위에서, 조용히, 그러나 강렬하게 관객의 심장을 울리고 있다.